산하기구

 

▮부설연구소

 

   -한국전통마상무예문화연구소

   -한국전통마문화연구소

 

▮보존회

 

   -전통마상무예 보존회

   -전통마상격구 보존회

   -전통마상재 보존회

   -전통기사 보존회

   -전통궁중보격구 보존회

 

 충혼당

 

충혼당(忠魂黨)은 (사)한민족전통마상무예·격구협회의 심신수련분야에 관한 부설 단체입니다. 충혼당은 선조들의 정신을 이어 자기본성을 닦는 곳입니다. 충혼당은 우리의 뿌리와 현재와 미래를 밝히는 단체로서 다음 세대를 위하여 정말로 진솔하게 우리 것이 무엇인가를 탐구하고 그 정신을 추구하는데 정진하여 바른 길을 제시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지난 반세기의 우리의 역사는 물질적 풍요만 추구한 나머지 사람이 살아가는데 있어 진정으로 소중한 가치들을 잃어 버렸습니다. 물론 사회일각에서는 우리의 정서를 회복하기 위하여 많은 전통문화를 복원 발전시키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또한 가무예악(歌舞藝樂)에 치우쳐 동(動)적인 무(武)의 문화는 제대로 평가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 충혼당은 선조들의 웅혼한 상무정신을 이어받아 역동적인 武의 문화를 열어갑니다

◇ 충혼당은 진정한 교육의 의미를 되살려 참된 인격을 도야하는 교육의 장입니다

◇ 충혼당은 화랑의 정신을 계승합니다

 

 

충혼당 수련내용

 

18반 무예

 

인간의 행위가 고도로 기술화되어 상대성을 띈 선과 각과 원의 포용성을 갖추어야 진정한 무예라 할 수 있다. 무예는 연무(練武)와 연공(練功)으로 나뉘며 이를 서로 병합하여 수련하는 것이 올바른 수련법이다.

연무란 권법, 검법등의 전문화된 기술의 행위를 통하여 몸과 마음을 바로 세우고 행위에 대한 이치를 깨우쳐 나아가는 과정을 말한다.

연공이란 호흡법을 통하여 기를 축적하고 심신을 닦아 맑게 함으로써 정, 기, 신을 단련하는 것을 말한다.

고대 병법개념인 18반은 일반적으로 외반18반과 내반18반으로 나누어 지는데, 외반18반은 일반적 개념의 18가지 병기를 뜻한다. 내반 18반은 문중내에서 적전제자들에 의하여 전하여 지는 비전18반이다.

충혼당에서는 외반18반을 수련한 후에 내반 18반을 수련하게 되므로 36반을 중심으로 도제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도 인 법

 

외가도인법: 외가도인법이란 요즘의 기공을 뜻한다. 신체를 동선으로 사지를 끌어당기고 밀어내어 관절을 움직이는 일종의 유연체조라 할 수 있으며 동작과 함께 호흡을 일치시킨다.

전체적으로 보아 손끝에서부터 발끝에까지 이르는 온몸운동이다. 고대에는 이를 도인 안마법(導引按摩法)이라 하였다. 안마라 하여 현대의 안마와 혼동하면 안 된다. 고대에 안마라 함은 자력에 의해 신체의 각 부위를 움직이는 능동적 신체운동을 뜻한다.

내가도인법: 내가도인은'맑은 기운을 들어마시고 탁한 공기를 내 쉰다' 등과 같은 일정한 토납법(호흡법,吐納)을 말한다. 호흡은 숨을 들이 마시고 내뱉는 과정속에서 나와 호흡과 의식을 일치시켜 정(精), 기(氣), 신(神)을 합일하는 정진을 함으로써 영(靈,깨달음)을 이루는 수련법이다. 따라서 인간에게 잠재되어 있는 무한한 의식의 존재를 찾아나가는 수련법이다.

 

 

도가명상

 

명상이란 마음의 안정된 상태를 추구하는 것이다. 심(心)과 기(氣)와 호흡이 일치 되었을 때 우리의 마음에는 평안이 온다. 인간의 마음이란 아주 미세하고도 섬세한 것이어서 명상에는 반드시 스승의 가르침이 전제가 되어야 한다. 충혼당에서는 옛부터 전하여지는 도가의 명상프로그램에 의한 명상수련을 실시하고 있다.

 

 

 

▮ 기사대회조직위원회(대한민국기사대회 & 국제기사대회)

 

우리민족과 기사(騎射)

고구려 고분 벽화에 등장하는 활기찬 기마 무사들과 속도감 넘치는 무용총의 수렵장면은 고대의 문화적 환경에서 말과 활의 위치를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가장 적절한 모델이다. 이러한 문화를 나타내는 당시의 교육체계는 흔히 육례(六藝)로 불리는 것으로 예(禮)·악(樂)·사(射)·어(御)·서(書)·수(數) 등 6종류의 기술이다. 예는 예용(禮容), 악은 음악, 사는 궁술(弓術), 어(御)는 마술(馬術), 서는 서도(書道), 수는 수학(數學)을 말한다.

말과 활, 이것이야말로 우리 민족을 대표하는 상징이요, 문화요, 수행의 덕목으로서 자기정체성을 잃고 혼란의 늪에서 허덕이는 지금의 우리에게 새로운 희망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이제 이러한 선조들의 유산을 단순한 관념과 학문의 차원을 넘어 일상생활에서 체험하고 느낄 수 있는 스포츠로 계승 발전 시키고자 한다.

왼쪽 위 사진은 평안도 덕흥리 고분의 "기사유희도"로서 당시 고구려의 사회적 분위기를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사료이다.

그림의 내용을 살펴보면 5개의 과녁이 세워져 있고 두 명의 경기자가 말을 타고 달리면서 과녁에 활을 쏘는데, 2개가 떨어졌고 3개가 남아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리고 경기 성적을 기록하는 사람, 심판을 보는 사람,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 경기를 진행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고구려의 기사 대회에서 5개의 과녁을 사용하여 시험을 보는 것은, 조선조 [경국대전]의 병전에 보이는 무과의 기사에서 채용된 과녁의 숫자와 일치하고 있어,고구려의 기사를

모방했을 가능성이 높거나 그 전통이 이어졌음을 유추할 수 있다.

마상무예·격구협회에서는 국내 최초로 조선시대 무과를 재연한 바있고 수 차례에 걸쳐 이를 각종 문화제행사에서 시연하였다. 이러한 행사를 통해서 확연히 느낄 수 있었던 것은 기사의 진행과정상 조선시대의 무과가 덕흥리 고분의 "기사유희도"벽화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에 마상무예·격구협회에서는 지난 10여년간의 고증과 실연 과정을 거치고 여기에 현대 스포츠적 요소를 접목시켜 기사가 우리 고유의 무예문화로서 세계로 뻗어갈 수 있다는 확신과 신념을 가지고 그 첫 대회로 제1회 대한민국 화랑 기사대회가 2004년 10월 10일 개최되었다.

기사대회는 초등부, 중등부, 고등부, 대학부, 일반부로 나누어 지며, 종목은 단사, 속사, 연속사로 진행되어 그동안 기록으로만 전해졌던 전통 기마문화가 2000여 년의 시공을 뛰어 넘어 현대에 되살아 나는 역사의 현장이었다.

기사대회는 초등부, 중등부, 고등부, 대학부, 일반부로 나뉘어 진행이 되었으며, 결과는 역시 우리문화와 역사가 살아 있다는 현장의 함성이었다.

어린 초등학교 학생들이 말을 타고 기마술을 보이고 기사대회에 참여한 어린이가 과녁을 맞추었을 때는 모두가 좋아하고 박수를 쳐주었으며, 일반부의 쉬지 않고 달리며 과녁을 맞추었을 때는 모두가 하나가 되어 과녁에 시선을 맞추어 꽂히는 화살에 힘을 쏟아 주는 살아있는 역사의 뜨거운 현장이었다.

2009년을 맞이하여 제5회 국제기사대회가 개최되었다. 기사대회에 참가하려면 (사)한민족전통마상무예·격구협회, 기사대회 조직위원회가 주관하는 소정의 교육을 이사하여 참가자격을 획득한 사람이면 남녀노소 누구나 참가할 수 있다.

 

 

 

 

▮거북선경주대회 조직위원회

 

한국에 대해 세계가 갖고 있는 인식은「작은 나라」라는 것이다.

더 중요한 문제는 우리 고유의 문화적인 특성이 세계속에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기 때문에 외국인들은 한국문화를 중국이나 일본에 예속된 종속문화로 생각한다는 점이다.

21세기에는 한 나라를 국력이나 경제적인 점에서 평가하기보다는 오히려 그 나라의 문화나 교육의 수준과 전통성의 맥락에서 파악한다.우리는 우리문화와 교육에 대한 자부심을 잃어 버린 근ㆍ현대사를 살아 왔다. 일제의 강점기간동안 얼마나 많은 문화유산을 잃어 버렸던가 !

현대의 역사극복과정마저 서구문화의 맹목적 추종에만 매달려 우리문화의 특성을 발견할 수가 없다.이러한 때에 호국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문화유산인 거북선을 전통수상경기화하고 이를 활성화 하여 청소년들에게 선조들의 훌륭한 문화유산을 직접 보고, 느끼고, 체험할 수 있도록 한다면 이는 교육적으로 매우 바람직스러울 뿐만 아니라 관광문화사업으로서도 가치있는 일이라 할 수 있다.이에 반만년 역사의 우리문화를 느끼고 체험하는 새로운 수상경기의 독창성과 우수성을 모든 국민과 외래관광객들이 함께 참여하여 보고 즐기게 하려고 한다.

또한 이것을 뿌리를 가지는 특유의 관광상품으로 개발, 국제경쟁력이 있으면서 문화국가 한국을 떠 올릴 수 있는 대표적 전통수상경기의 축제로 만들어보고자 시작하게 되었다.

거북선에 관한 기록은 조선 초기의 〈태종실록〉에 처음 보이기 시작한다. 1413년(태종 13)에 "왕이 임진강 나루를 지나다가 귀선과 왜선으로 꾸민 배가 해전연습을 하는 모양을 보았다"라는 구절이 있고, 또 1415년(태종 15)에는 좌대언(左代言) 탁신(卓愼)이 "귀선의 전법은 많은 적과 충돌하더라도 적이 해칠 수가 없으니 결승의 양책이라 할 수 있으며, 더욱 견고하고 정교하게 만들게 하여 전승의 도구로 갖추어야 한다"는 뜻을 상소하고 있다.

이러한 기록 내용으로 보아 거북선은 왜구의 격퇴를 위하여 돌격선으로 특수하게 제작된 장갑선(裝甲船)이었음을 알 수 있다. 즉, 기존의 판옥선에 특수한 목적으로 철갑을 입힌 전투용 선박이었다. 따라서 거북선의 기원을 왜구의 침해가 가장 심했던 고려 말기로 보는 견해도 있다. 이와 같이 거북선은 고려 말, 또는 조선 초기에 이미 제조·사용되었으며,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壬辰倭亂) 당시에는 이순신(李舜臣)에 의하여 창제된 철갑선으로서의 거북선이 실용화되었다.

임진왜란이 끝난 지 197년 뒤인 1795년에 편찬한 「이충무공전서(李忠武公全書)」가 있는데, 여기에는 당시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통제형거북선(統制營龜船)과 전라좌수영 거북선(全羅左水營龜船)의 45도 투시도와 치수가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충무공 행장」에 이르기를 "공이 전라좌수사를 지낼 때 왜적이 장차 쳐들어오리라는 것을 알고 큰 전선을 창제하였다. 배 위를 판자로 덮고 덮개 위에는 열십(十)자로 좁은 길을 내어 사람이 겨우 다닐 수 있게 하고 나머지는 모두 창칼을 꽂았다. 이물(뱃머리)에는 용머리를 달고 고물(뱃꼬리)에는 거북꼬리를 달았다. 총(대포)구멍은 앞뒤와 좌우에 각각 6개가 나있고 큰 탄환으로 쏜다. 적을 만나 싸울 때에는 거적으로 거북 잔등판을 덮어씌워 창칼을 가리고 함대의 선봉이 되어 나아간다. 적군이 배에 오르거나 뛰어내리면 창칼에 찔려 죽게 되고, 적선들이 엄습하여 오려하면 한꺼번에 대포를 쏘아 가는 곳마다 휩쓸지 않은 곳이 없었다. 크고 작은 싸움에서 이 거북배로 공을 거둔 것이 심히 많으며, 모습이 엎드려 있는 거북과 같으므로 이름을 거북선(龜船)이라고 하였다 ."

이로써 그 구조와 성능을 엿볼 수 있다. 판옥선과 거북선의 가장 큰 특징은 배가 회전할 때 회전 반경이 필요 없이 제자리에서 180° 회전할 수 있다는데 있었다. 그 유명한 임진왜란 때의 한산 대첩도 이러한 우리배의 특징에 기인하여 학익진 을 펼칠 수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왜 거북선 경주대회인가... >

거북선은 우리 민족의 독창성과 세계최초의 철갑선으로 조명되어 있으며 그 전함의 우수성은 세계 해양사에서도 깊이 각인된 바 있다. 그러한 거북선이 많은 곳에서 복원 전시되어 청소년들의 마음속 깊이 자랑스러운 선조들의 문화유산으로 자리 매김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거북선은 세계 최초의 철갑선이자 독특한 형태의 창조적 전함으로 영귀선 및 창제귀갑선으로도 불리운 것으로 많은 사료 속에 나타나고 있다. 이충무공께서 조선에 침범한 왜군을 물리치고자 제작, 전시에 활용하여 수많은 해전에서 혁혁한 승리를 하였다. 이에서 거북선의 자랑스런 위용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사)한민족전통마상무예·격구협회에서는 21C 새로운 해양 문화의 발전시기에 발맞추어 자라나는 청소년 및 일반인 누구나 우리의 역사 속에서 잠을 자고 있는 거북선을 직접 체험하고 느낄수 있도록 하고자 한다.

지금 우리 주변의 수상 경기를 보면 윈드써핑, 요트, 조정, 카누 등 서구적 수상 스포츠는 있어도 전래되어 내려오는 우리의 전통 수상 스포츠는 어디에도 없다. 그동안 우리가 너무 소홀히 하여 역사 속에 묻어만 두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조심스런 우리의 소견을 말해본다.

21세기에는 우리 국토를 감싸고 있는 동해, 서해, 남해등 물(해양)에 관한 문화가 새롭게 조명되고 한민족의 태동을 같이한 젖줄이 잠을 깨는 시기가 될 것이다 . 이에 민족문화의 정수인 거북선을 현대로 조명하여 역동하는 한민족의 기상을 느끼면서 누구나 참여하고 즐길 수 있는 해양 스포츠로 자리 잡게 된다면 선조들의 잠을 깨울 수 있는 기상이 전국 방방 곳곳에서 힘차게 태동 할 것이다.

또한 21세기에는 자국의 문화가 잠을 깨야만 세계 속에 인정받게 될 것이다. 세계인들이 몰려올 때 우리는 우리의 전통적 가치관이나 문화가 없이 서구적 문화가 주류를 이루는 관광 행사에만 치우친다면 이는 너무도 그릇된 방침이 될 것이다.

이제 새천년에는 해양문화의 전쟁이 일어나게 될 것이다. 그래서 서구의 해양문화가 아닌 가장 한국적인 해양문화가 떳떳이 주인행세를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가장 한국적인 해양문화를 내세워 한민족 남북한 청소년들이 사상이나 이념을 초월하여 한강에서 그리고 평양 대동강에서 남북한 청소년 거북선 경주 대회를 연다면 우리 민족의 소중한 문화유산이 새롭게 조명되는 것은 물론이며 자라나는 우리 후학들에게 새로운 수상문화가 자리 매김을 하고 힘차게 거북선을 저어 나가는 모습에서 한민족의 기상이 태동되리라 본다. 이렇듯이 선조들께서 남기신 소중한 문화유산을 한껏 발전시켜 새롭게 조명하고 그 가운데 미래로 힘차게 도약 한다면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민족의식을 고취 시키고 우리의 문화유산을 소중히 여길 수 있는 마음을 길러줄 것이다.

 

 

<거북선 경주대회를 열기까지>

지난 98년부터 거북선경주대회 조직위원회에서는 거북선에 관한 여러 사료를 수집하여 여러 각도의 조명을 한 바 있다. 지금껏 거북선은 우리 민족의 독창성과 세계최초의 철갑선으로 알려져 있으며 그 우수성은 세계 해양사에서 깊이 각인된 바 있다. 그러한 거북선이 많은 곳에서 복원 전시되어 청소년들의 마음속 깊이 자랑스러운 선조들의 문화유산으로 자리 매김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경주용 거북선 제작과정>

북선 경주대회를 열기까지 다음과 같은 과정이 있었다.

첫째, 철저히 역사적 사료를 참고로 하여 현대에 맞는 새로운 형태의 모습을 창출하였다.

둘째, 과거 우리의 문화유산인 거북선은 승조원이 160~180명이나 되는 거대한 전함이었다. 이를 경주함으로 만들기 위하여서는 축소하는 형태의 설계가 필요했다.

셋째, 전형적인 조선의 판옥선 및 거북선의 형태로 소형화 하는 과정에서 승조원 및 거북선의 무게(중량)조절이 시급하였다.

넷째, 배를 만드는데 있어서 재질 및 형태ㆍ크기 등 다각적인 추정이 필요하였다.

다섯째, 배를 만드는 전문 장인이 필요했다. 전문가의 고증과 그의 기능으로 제작하여야만 거북선의 형태가 정확할 뿐만 아니라 사용에도 용이한 것이다.

여섯째, 자금 및 수송ㆍ접안시설 등 너무도 많은 현실적 문제를 극복해야만 했다.

일곱째, 거북선의 활용ㆍ경기 및 시합 규칙 그에 따른 보관방법 등을 강구하여야만 했다.

여덟째, 해양수산부의 배에 관한 여러 법적 문제 및 안전도에 관한 지식이 필요했다.

아홉째, 우리 해양 문화에는 과거의 역사 속에 수군 제도로서만이 존재한다. 그러한 것을 기록만을 바탕으로 수상 경기를 만든다는 것 역시 커다란 벽 이었다.

 

 

 

<경주대회 방식>

 

 

 

 

대상

경기함 종류

경주 거리

방식

  초등부

  6인승

300 m, 500m

결승점 통과, 반환점 돌아오기

  중ㆍ고등부

  6ㆍ15ㆍ25ㆍ55 인승

600 m, 1000 m

상동

  대학부

  6ㆍ15ㆍ25ㆍ55인승

1000 m, 2000 m

상동

  일반부

  6ㆍ15ㆍ25ㆍ55인승

1000 m, 2000 m

상동

  종합경기

  종합 경기

2000m~4000 m

상동

 

 

  
<거북선 경주대회 진행방법 및 제반사항 >


 ① 각 참가 팀은 출발선에 일직선으로 대기하며, 북소리로 경기의 시작을 알린다.
 ② 각 방식에 따라 결승점에 먼저 도달하는 팀이 우승을 한다.
 ③ 심판선(지휘선, 모선)은 판옥선으로 한다. (단, 상황에 따라이용이 편리한 배로 대치할 수 있다.)
 ④ 다른팀의 진로를 고의로 방해하거나 비 신사적 행위를 하는 팀은 심판이 그 사실을 인정된다고 판단하는 순간 탈락으로 명하며,경기장 측면으로 퇴장시킬 수 있다.
 ⑤ 조직위원회는 경기장 좌·우에 수상 안전요원을 배치하여 안전에 최선을 다 한다
 ⑥ 경주 참가팀은 선수 전원이 수상안전 조끼를 착용한다.
 ⑦ 심판선은 경기라인에 대기하며, 반칙 여부 판정등 경기의순조로운 진행을 관리, 감독한다.
 ⑧ 각 팀의 북치는 승조원이 지휘자가 되며, 북소리에 호흡을 맞춘다.
 ⑨ 선수들은 간편한 복장으로 통일하여 착용한다.
 ⑩ 선수들은 맨발로 경기에 임하므로 안전에 주의 한다.
 ⑪ 경기장 좌·우에 만장 및 영기를 계양하여 경기의 흥을 더한다
 ⑫ 전통 풍물놀이와 민속놀이를 같이하여 민족문화의 새장을 연다.
 ⑬ 상기 이외의 제반사항은 거북선 조직위원회의 지시 및 결정에 따른다  

 


<제 1회 대회 모습> 

 

 

2000년 7월15일 한강시민공원 이촌지구 거북선 나루터에서 역사적인 충무공배 제1회 거북선 경주대회가 열렸다. 작기는 하지만 임란이후 400여년만에 움직이는 거북선의 모습을 보게 된 것이다. 우리의 정신이 아직 죽지 않고 살아있음을 보여준 상징적인 사건이요, 조상의 얼과 혼을 계승하는 체험문화의 장이 열리는 역사적 순간이기도 하였다. 홍콩의 용선이나, 기존의 수상경기인 조정, 카누보다 훨씬 멋있게 보이는 것은 우리 몸속에 흐르는 바꿀 수 없는 한국인의 피 때문일까?
 이제는 이 시합이 청소년 교육의장과 문화체험의 장으로 더욱 확대 발전되어 민족의 에너지를 하나로 모으는 마당이 되기를 ...

 

<거북선 경주대회의 가능성>


지금 우리 주변의 수상 경기를 보면 윈드써핑, 요트, 조정, 카누등 서구적 수상 스포츠는 있어도 전래되어 내려오는 우리의 전통 수상 스포츠는 어디에도 없다. 그동안 우리가 너무 소홀히 하여 역사 속에 묻어만 두고 있는 것이 아닌가 조심스런 우리의 소견을 말해본다.
21세기에는 우리 국토를 감싸고 있는 동해, 서해, 남해등 물(해양)에 관한 문화가 새롭게 조명되고 한민족의 태동을 같이한 젖줄이 잠을 깨는 시기가 될 것이다. 이에 민족문화의 정수인 거북선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조명하여 역동하는 한민족의 기상을 느끼며 누구나 참여하고 즐길 수 있는 해양 스포츠로 자리 잡게 한다면 세계 속의 한국으로 인정받게 될 것이다. 문화가 없는 민족은 이제 설 자리가 없다. 21세기는 우리의 문화를 세계에 선보이는 역사의 장이 펼쳐질 것이다. 세계인들이 몰려올 때 우리의 전통적 가치관이나 문화가 없이 서구적 문화가 주류를 이루는 관광 행사에만 치우친다면 이는 우리 스스로를 비하시키는 것이다.

2005년 제1회 아산시 충무공배 거북선 경주 및 체험대회를 시작으로 (사)한민족 전통 마상무예·격구 협회, 거북선 경주대회 조직위원회는 내수면과 해양에서 거북선 경주대회를 다각적으로 개최하여 서구의 해양문화에 잠식되어 있는 우리의 현실을 일깨우고, 전통 해양문화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림으로서 전통 해양문화의 계승, 발전에 주력하여 동적인 전통문화 체험의 장을 펼쳐나갈 것이다.

 

<거북선 경주대회의 교육적효과 및 기대효과>
  
1. 대회를 선조들의 호국의 얼과 혼이 담겨있는 문화공간으로의 승화시킨다.
2. 한민족 전통의 수상문화 복원 및 창달로 청소년 및 국민의 거북선에 대한 새로운 관심을 부여한다.
3. 잠자고 있는 한민족 해양문화의 발전기회를 부여한다
4. 새로운 해양문화로 발전시켜 세계속의 해양 한국 건설의 토대를 만든다.
5. 거북선 경주대회에 참가 또는 체험을 통하여 거북선의   독창성과 우수성 재확인함으로써 살아 있는 역사 교육의 장이 되게한다.
6. 자라나는 청소년에게 창조적 전통문화 소유국으로써의  자긍심 고취하여 긍정적 가치관을 가질 수 있도록 한다.
7.또 다른 민족스포츠인 격구와 함께 청소년 수련프로그램으로 정착화시킨다면 호연지기를 배양함과 아울러 협동심, 리더십등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주도적 역할을 담당하는 인재양성의요람이 될 수 있다.
8. 지방자치 시대를 맞이하여 스쳐가는 생동감있는 문화관광상품으로써의 역할을 한다.
9. 지방의 문화제행사를 다른 지역 관광상품과 차별화 및 특성화하여 스쳐가는 관광이 아닌 직접 참여하게 함으로써  관광객들이 체류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